/ 유례

 

  처지(處地)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말인데 역지나 처지 둘 다 땅이 들어간다. 옛날에는 땅이 사람의 신분이나 상태를 나타냈나 보다. 요즘은 돈이겠지만 땅도 돈의 한 형태이긴 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사람의 신분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다는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뇌물죄로 조사를 받는 세상이니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수선한 시국과 경기 침체에 물가 상승, 실업률, AI, 독감...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경험이고 추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며 선을 사랑하는 민족임을 다시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이번 기회에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 화복무문(禍福無門), 인과응보(因果應報)되리라 믿는다.

 

  다시 단어로 돌아가서, 서로의 땅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건 서로의 신분을 바꾸어 생각한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언제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 소위 갑의 입장에서 이 말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삶이란게 상황에 따라 을이 갑이되고 다시 을이 되기도 하더란 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던가. 이때 이른바 처세에 능하다는 사람들은 갑일 때 상대를 용서하고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때 무조건적 이해와 용서가 답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만일 무조건적 이해와 용서를 한다면 무질서와 혼돈, 하극상이 일어날 것이다. 역시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해와 용서의 기준은 더욱 어려운 것이어서 순간의 감정에 좌우되기가 쉽다. 아무리 공정한 사람이라도 이를 지키기 어렵다고 본다. 이해와 용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순간 순간 그렇게 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음 그럼 왜 상황마다 달라질까? 많은 경우가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을 몇 자 적어보자면 을의 상황에 한번이라도 처해본 사람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고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선천적으로 이해심이 넓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화낼 용기가 없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경우는 워낙 소인배여서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쓰고 나니 슬퍼지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현명하다고 생각만 하고 위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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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이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이다.[1]

정확하게는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경청하듯이 자신도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라는 의미. 논쟁에서 자주 사용되는, 아니 사실 분명히 따라야 하는 개념이다. 상대의 생각이나 그런 말을 하는 이유 등은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만 펼치면 그건 토론이 아니라 개싸움. 앞서 언급했듯이, 상대방이 분명히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 줬는데 여전히 동의하지 않거나 상대에게만 강요하고 정작 본인은 뜻을 굽히지 않는 무개념 행위는 오히려 이중잣대에 가까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런 이중잣대 때문에 '역지사지를 해보라'는 말에 반감을 갖는 사람도있다. 물론 그게 지양해야 되는 행위임에도 계속 사람들이 하다 보니까 이런 사자성어가 나온 것이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각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갈등이나 논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럴 때 정말로 싫겠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기적적으로 협의점을 찾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감정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것은 막을 수 있다. 물론 양측이 악의가 없다는 전제하에.

실제 역지사지를 체험해볼수 있는 곳이 대학교 시사 토론 동아리.
시사토론동아리 특성상 대부분의 부원이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토론주제를 정하고 사다리타기(...)로 양 진영을 정하게 된다. 이때 사다리 잘못 타면 자신을 부정하면서 토론을 해야하는데 이러다가 자기를 완전히 부정하는자기의 의견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역지사지는 자신에게 적용하여, 성찰하고 남을 배려하는데 의미가 있다. 남에게 역지사지를 강요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건 몹시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추태에 불과하다. 논리적이지도 못하다.

굉장히 잘못된 것이기는 하나, 강간만큼 역지사지를 제대로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항목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물론, 확신범의 경우에는 역지사지가 씨알도 안 먹힌다. 황금률에 대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님이 어떻게 비판하는지 문서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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